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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죠죠의 기묘한 드림

어느 날 오후의 두 사람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일상 속, 어느 나른한 오후였다. 본성을 숨기며 지내는 그에게 드물게 편안한 그 아이와의 시간. 그 아이와 있을 때면 숨기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아이는 이 거대한, 사람 많은 저택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심지어는 말하지 않아도 그 아이는 이해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야심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건만,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고발하거나 말리는 일 없이, 더 나아가서는 아예 그걸 입 밖으로 내는 일 없이 그와 어울리고 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명은 없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하게, 그 아이가 그의 편이자 그와 같은 악인임을 증명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그건 그 아이에게도 그랬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린 메이드에게 주어진 짧은 휴식 시간을 굳이 자신이 담당하는 도련님과 대화를 나누며 보내지는 않았을 테니까. 지암은 디오와 어울릴 때면, 상대에게 억지로 웃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괜찮았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혹은 대답을 해도 디오는 자신을 이해했다. 지암은 그의 곁에 말없이 머무는 것이 좋았고, 그에게 반박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 자신의 유일한 친구 앞에서는 굳이 숙녀가 되지 않아도 되어서 기꺼웠다.

  그렇기에, 표정으로 티가 나지 않아도, 그는 디오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우정이나 연정 따위와는 다른 것이었다. 같은 것에 대한, 또는 결핍된 것에 대한 갈망일지도 모르겠다. 지암은 불확실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아직 이 세상에 없는 것이 명확했으니까. 그래서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자신과 공유하는 디오를 사랑했다.

  다른 이들과 다르지만 표현할 언어가 없어 정당화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변명할 필요가 없는, 즉 그들을 압도하는 세상의 거대한 요구에서 잠시 멀어질 수 있는 장소는 그의 방뿐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디오의 방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은 말이 맴돌았다. ‘우리는 규격 외의 사람들이니까.’ 누구도 크게 말한 적 없음에도, 두 사람은 항상 그런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1] 다만 그렇기에,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기에, 두 사람 모두 허리띠를 풀고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공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런 공간을 자신과 함께 만들어준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가 행복하기를, 지암은 바랐다. 그것이 어떻게 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행복인지는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지독히 무덤덤하였던 지암에게, 이 세상에서 자신만을 사랑하는 디오에게 모두, 타인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행복은 행복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은 어차피 자신을 상처 입히며 만들어져 왔던 것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상처 입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무구하고 악의적인 착각으로 그들은 악한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암은 그렇게 착각하기로 했다. 자신에게는 찬란한 감정이 없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도, 모든 걸 적시는 슬픔도, 엄청난 행복도 없었으며 지나친 불행도 없었다. 저감정, 무감동의 지암에게 선행과 악행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넘어진 아이에게 손을 건네는 것이나 그걸 비웃는 것이나 동일하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면, 굳이 나쁘게 굴 이유도 없는 셈이다. 선할 이유가 없는 만큼 악할 이유도 딱히 없지만, 지암이 악의적으로 착각하자 결심한 것은 단지 자신을 디오가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처음 발견한 사람이 그 이름을 짓듯이, 지암은 악한 쪽을 택하기로 하였다. 악에 무감한, 아예 악으로 물든 디오 브란도가 그에게 처음으로 공감해주었던 탓에.

  “있지, 디오.”

  어린 메이드가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운, 자신의 도련님에게 말을 걸었다. 벨벳 카우치에 나란히 기대어 티 타임을 기다리고 있자니 절로 잠이 쏟아졌다. 나른하고 따끈한 햇살이 창을 통해 비치었고, 부드러운 벨벳의 감촉마저 당장 잠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언제나 뻣뻣하게, 정중하게, 신사답게 행동하는 디오가, 그 무릎에서 편안하고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부드럽게 굽이치는, 짧은 금색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으면서, 지암이 말했다.

  “나는, 상대가 너라면, 남들처럼 열렬히, 연인으로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절대 아니지만….”

  디오는 여전히 졸린 기가 남았지만, 살짝 놀란 눈으로 지암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타인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열렬한 애정표현이 이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지암이 무미건조하게 건넨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자신과 함께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말은, 디오에게 마치 충성을 맹세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동시에 그에 대한 사랑 고백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리.”

  “알아.”

  누구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그 이름을 부르며, 그러겠다고 다짐해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물론 그것마저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자신보다도 냉정하고 무심한 그가, 자신에게 어느 날 오후에 바친 맹세였다.

 


[1] The Rocking-Horse Winner, by D.h. Lawrence. London: Macmillan Education,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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