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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죠죠의 기묘한 드림

연인의 초상

  눈물 자국이 번진 붉은 뺨을 손등으로 가볍게 쓸고 있자면 연인의 절정에 도대체 누가 죽음이라는 말을 붙여주었는가 별 의미 없는 고찰을 하게 되었다. 아니, 이 경우는 반대가 맞는 말이겠지. 연인의 죽음에 누가 절정이라는 말을 붙였는가? 파르르 떨리며 꿈틀거리는 몸, 끅끅거리는 숨소리에 축 늘어진 팔다리를 보면서도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생libido의 궁극임을 알아채다니, 처음으로 그 말을 한 사람은 분명 상대를 자신처럼 이해하고 있었을 테다. 혹은 전혀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만, 사후경련하는 몸을 보며 오르가슴이라 표현해버리고야 마는 그런 변태적인 살인마에 관한 생각은 지금처럼 사랑스러운 순간에 하기에는 걸맞지 않은 것이다.

  주인을 향한 끝없는 애정은 그 끝이 없는 만큼 악착같이 변형된다. 사랑은 이윽고 그것이 무엇이든 사랑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와 그가 무엇을 하든 사랑하고야 말겠다는 집착으로 나뉘었다가, 다시 사랑의 형태로 엮여 상대를 압도할 때까지 한없이 거대해지기만 한다. 무한한 사랑을 내비치는 존재를 사랑하지 않기엔, 나는 너무 오랫동안 그런 온기 없이 살아왔으며 그것을 그리워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하고 싶었던 존재를 잃은 것이 이미 100년도 더 넘은 일이다. 처음은 타의였지만 마지막은 자의였다. 내가 그 작자를 버렸다—그리고 그걸 마지막으로 더는 사랑하지 않았다.

  배시시 웃으며 내 손에 제 작은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가 느릿하게 뜨고는 나와 눈을 마주치는 애완의 태초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막 온갖 감정을 쏟아낸 참인데도 더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가 바란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직접 끊어낸 발목과 약지의 빈자리가 어찌 이리도 선정적이며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지. 까닭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내가 이것을 그렇게 만들었다. 내 분노로 겁박하여 발목을 잘라내고 손가락을 끊어내게 했다. 그렇다, 이건 내가 만든 나의 것이다. 이 작은 것은 나만의 것이다. 이건 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해야만 하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나의 아이였다.

  이 작은 것이 본인의 입으로 말했던 그대로였다. '나의 것'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되는 법이었다. 영악하기도 하지, 나의 사랑스러운 애완은. 필시 내가 자신을 거두면 언젠간 사랑하게 되고야 말 것을 알고 저를 애완으로 삼아달라 했을 테다. 그러나 이 애정이 녀석의 의도였던 건 아니라는 것 또한 내가 잘 알았다. 여기서 얌전히 내가 제 머리칼을 쓰다듬도록 허락하고 있는 건, 그러한 진실을 마음으로 알고 있어도 감히 바랄 생각조차 않았던 겁먹은 소동물이다. 내가 사랑 담은 말을 하면 굳어버리던 작은 것을 ‘나를 조종했다’며 문책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실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내게는 이게 필요했던 것 같으므로.

  그를 보면 안정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차올랐고, 사랑하게 된 후로는 항상 그를 향한 갈증이 잔잔하게 내 욕구의 가장 바닥에 깔려 있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충만해지지만, 아주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다. 무얼로 채워야 좋을지, 내가 무얼 바라는지 나도 몰랐다. 녀석도 그렇게 말했다. 함께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하다고, 동시에 나와 함께라면 모든 걸 하고 싶다고. 그래서 그것이 사랑임을 알았다. 그만큼 충실한 애완동물이 하는 말이 거짓일 리 없으며, 녀석도 나를 그렇게 신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이 사랑이라는 선언이 착각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은가. 그 세계에 두 사람만이 있다면, 세상의 두 주인이 그 착각을 사실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이 되지 않겠는가?

  “저는 당신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어요.”

  애완은 수줍은 목소리로 더듬더듬 능수능란하게도 내뱉는다.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여주면 곧 잠들어버릴 정도로 아스라한 의식으로도 이리 말재주가 좋으니 원. 구태여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지만, 너는 이미 내 세계의 주인이었다. 나는 이리 깊게 사랑하게 된 너를 잃을 것이 너무나 두려워, 이 작은 몸을 내 손으로 뼈를 으스러트리고 살을 짓이겨 아예 영원히 나의 일부로 만들고만 싶었다. 너는 절대 저항하지 않겠지. 오히려 그마저도 반길 것이다. 네게는 그 행위만이 내가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는 증명이 될 테니까.

  내가 너를 완전히 잡아먹는다면 분명 우리는 헤어지지 않게 될 테다. 그러나 다시 네 온기가 내 품에 닿도록 분리될 수도 없겠지. 그러니 나와 죠나단의 운명이 그랬듯 우리가 처음부터 하나가 아니라 각자의 몸으로 태어난 것에도 분명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 나는 믿겠다. 우리가 100년 뒤에야 만난 것에도 분명 뜻이 있겠지. 아무런 뜻이 없으면 그것도 좋다. 다만 우리가 서로 떨어진 채 함께하고 있음이 운명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 운명으로 엮여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일 테니까…. 이렇게 애완은 주인이 저를 버릴까 두렵지만 사랑하고, 주인은 애완을 사랑하지만 그것의 덧없음을 두려워한다. 사랑과 불안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라는 연인의 초상인 셈이다.

  자긴 이런 깊은 마음을 느끼지 못해서 살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하던 것을 생각하면, 몸이 더 조각나고 불안함을 못 이겨 다툴지라도 너는 내 곁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할 테다. 스스로 가장 잘 알지 않느냐, 지암. 더 늦어버리기 전에 나를 만나서 다행인 줄을 알거라. 몇 명이나 되는 자격 없는 이가 너를 탐냈을지, 너는 그걸 겪으며 주인 없는 생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었을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깨는 것은 언제나 너의 존재다. 습관처럼 무언가 끌어안으려는 듯이 팔을 뻗어오자, 모였던 사상은 다시 파편이 되어 흩어진다. 잠결에도 주인의 품을 찾는 모습도, 유달리 따뜻한 체온도 꼭 새끼 동물 같아서, 보고 있으면 그저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네가 원하는데 요람이 되어주지 못할 이유가 있겠느냐. 다시 옆에 누워 작은 인영을 단단히 끌어안고, 어느새 잠든 아이의 머리카락에 가볍게 입술을 짓눌렀다. 사랑스러운 것. 이 밤이 너에게 상냥하든 상냥하지 않든, 너는 내 품에 있으니 괜찮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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