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도 시간은 흘러만 갑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빠르게도 지나간다고들 하지만, 우습게도 당신과 함께할 때보다 당신이 없는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긴 시간을 흘려보내며 나의 시간이 빠르게도 줄어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하고 묵직한 당신, 나의 중력, 나를 이 우주, 넓은 창공에서 지구로 끌어당기는 단 한 명. 그리워하고 있답니다.'
'언제나 당신을 생각하며,'
'당신의, 당신만의.'
묵직한 마음을 눌러 담아 쓴 편지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주인은 때때로 자리를 비웠다. 그저 재능이 있는 누군가를 찾기 위해, 친구를 만나기 위해, 혹은 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공허해지는 마음에 충성심을 욱여넣어도 아직 모자라서, 그만. 재촉하듯 써버린 편지였으나, 이번 주인의 부재는 평소보다 더 길고 쓰라려서…. 어디로 보내야 좋을지도 모르는 문장을 무턱대고 써 내리고 곱게 접어 봉랍하고는, 애완동물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차마 분노나 실의로 구기지도 못할 정도로 깊은 사모의 마음을 담아버린 탓에, 곱게 제 방 책상에 얹어두고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멍하니 베개에 얼굴을 묻고 주인을 생각하고 있자면 잘 모르겠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이 생경했다. 단순한 그리움이라기엔 이젠 더는 애타지도 않고 끓지도 않을 정도로 그의 부재가 익숙해져 버렸는데도, 주인의 부재는 꼭 자신의 일부를 떼어다 다른 곳에 두어버린 것 같은 감각에—
그래, 아마도 애완은 자신이 수개월을 우울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의 영혼이 어딘가 다른 곳을 떠돌고 있으니 우울할 수밖에 없을 테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제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는 건가, 지금. 사모하는 이가 곁에 없다는 이유로.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직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보처럼. 금방에라도 돌아와 기다렸느냐며 밤 인사를 해줄 것만 같은 주인의 품에 와락 달려들어 안기고, 괜찮았던 척하면서도 괜히 투정을 부리고, 얼굴을 부비고 가두어지듯 끌어안아지고 싶었다. 애완은 다시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혼자서 완전하던 자신은 간데없고 어느새 주인이 없으면 제 감정도 주체 못한 채 눈물이나 흘리는 모자란 인간이 있었다. 얼마나 모자란 인간인지, 지금 다시 주인을 만난다면 절대로 괜찮은 척조차 하지 못할 터였다. 아마 품에서 와앙 울어버리고 말겠지. 철없는 아이처럼, 그분의 품에선 항상 그랬듯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나 또한 당신을 가두어 내 곁에만 있게 하고 싶다고… 그런 고백을 하고 싶었다. 당신께 필요한 유일한 사람이고 싶었고, 나만 있으면 당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건방지고 오만하게도, 나라는 애완은 주인이 자리를 비우지 말았으면 한다고.
나는 당신을 너무 깊이 사랑한 나머지 병에 든 것 같습니다, 라는 문장을 썼어야 했는데.
애완은 그런 잡다한 생각을 하며 결국엔 혼자 숨죽여 흐느끼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쳐 잠들고야 말았다. 젖은 베갯잇은 신경도 쓰이지 않는 깊은 슬픔 속에서… 아마도 꿈을 꾼 것 같았다. 내용은 딱히 기억나지 않았다. 대단히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으며 꿈에서라도 주인을 보았다면 기억을 했을 터이니 그조차 아니었다. 무슨 꿈을 꾸었던 걸까….
반쯤 깨었다 잠들기를 반복하던 정신은 그래도 모든 소리를 잡아내었다. 저쪽에서 무거운 방문이 조심스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집사겠지, 숨죽였다고 해도 분명 뻔히 소리가 들렸을 테고, 조용해지자 잠들었는지를 살피러 왔을 것이다. 잠들었다면 커튼을 치고 이불을 덮어주고 저도 잠들러 가면 되니까. 그런데 집사가 노크 없이 들어오던가? 잘 모르겠다. 애완은 그새 또 수마에 사로잡혀 깜빡 잠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제 위로 덮인 이불의 보드라운 감촉에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듯 한 번 끌어안았다가 놓았다. 결국은 그렇게 울다 지쳐 잠들었다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살짝 부은 데다가 졸린 눈을 꿈뻑거리며 자리에서 비척이며 일어나 테이블을 짚었다. 그 자리에 있을 편지의 얇은 두께감을 예상하며 짚은 테이블에는 아무것도 없어, 눈을 비비며 여러 차례 테이블을 다시 짚었으나 여전히 감촉이 없었다. 바람에 날렸나? 반쯤 감긴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바닥을 살폈으나 여전히 편지는 간데없었고,
대신 그 자리에는 안개꽃과 함께 잘 말린 장미꽃 한 송이가 남아 있었다.
아, 분명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 주인은 장미가 어울리는 사람이었고 애완은 안개꽃을 좋아했더랬다. 정말이지, 하필이면 그런 편지를, 하필이면 그런 날에 와서 받아 가시다니. 나를 한심하게 만들고, 나를 바보로 만들고, 나를 모자라게 만들어, 당신은. 어제의 슬픔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때때로 살피시는 걸 알았다면 조금 더 편지를 자주 쓸 걸 그랬다는, 또 터무니없이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오늘도 당신이 없는 하루는 당신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애완은 저녁에 마저 채울 편지의 첫 문장을 그렇게 써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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