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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죠죠의 기묘한 드림

What Happens in Cairo

  “다비라고 했던가…. 제법 재미있는 녀석이로군.”

  다니엘 J. 다비는 타고난 도박사였다. 웬만한 일로는 당황하거나 겁먹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지는 일도 없었다. 이날도 그저 여비 벌이로 카이로의 카지노에서 가벼운 노름판을 벌였을 뿐이었고, 어렵지 않게 쓸어모았을 뿐이었다. 판돈을 크게 불리지도 않았고 영혼을 거는 내기처럼 눈에 띄는 짓은 하지도 않았건만….

  “호오, 이 테이블이 가장 활기차 보이는군. 우리도 참여할 수 있을까? 보아하니… 다른 참여자들은 판돈도 다 잃은 모양이고.”

  "에엥, 저도 해요? 도박은 자신 없는데."

  붐비는 카지노에서도 유달리 눈에 띄는 거대한 황금빛 남자가 그의 앞에 태연하게 앉았다. 지독하게 소름 끼치는 기운, 몇 세기는 살아온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 남자는 두려울 정도로 외모도 목소리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위험하다는 것은 직감만으로도 알 수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수집가로서도 도박사로서도 마음이 동했다.

  저 남자의 영혼이 갖고 싶었다.

  “이 다니엘 J. 다비, 걸어오는 내기는 거절한 적 없습니다. 기꺼이 상대해 드리죠. 그쪽 분들은 성함이?”

  가지고 싶다면 가지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며 받아들이자 남자는 다비의 속셈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으며 동행자를 제 옆에 타일러 앉혔다.

  “재미로 하는 셈 치고 한 번 해보아라. 돈이야 얼마든 있지 않으냐.”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일행으로 보이는 선명한 분홍빛의 여자가 부루퉁한 얼굴로 중얼거리다가, 곧 체념한 듯 짧게 한숨을 쉬었다. 내기에 약하든 뭐든, 애초에 그리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테지. 다비는 적극적으로 도박에 참여하는 부류만이 아니라, 저렇게 소극적인 부류도 얼마든 만나보았다. 보통은 몇 번 이기게 해주면 금세 눈이 멀어 더 큰 돈을 걸고 말지만…, 이번엔 어떨는지.

  “이런, 일행을 설득하느라 소개가 늦었군. DIO라고 불러주게. 이쪽은 지암.”

  “교환해 온 칩까지만 쓰고 가는 거예요, 주인님. 아시죠?”

  “알고 있으니 걱정 말거라. 네가 재미없어하는 일을 내가 언제까지고 붙잡을 리가 없지 않으냐.”

  풍채 좋은 사내는 가볍게 동행의 머리를 토닥인 뒤, 딜러에게 테이블에 대해 물어보았다. 곧 남자와 다비는 이 인원으로 어떤 게임이 좋을지 이런저런 의논을 했지만, 결국은 여자 말대로 텍사스 홀덤을 계속하게 되었다. 게임이 길어지는 것도 너무 짧아지는 것도 싫을뿐더러 당장에 규칙과 점수 계산법을 아는 다른 게임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제 의견대로 게임이 결정되자 그도 결국은 참여할 마음을 굳혔는지, 직전의 카드 상태와 팟을 훑어보며 흐름을 가늠하는 듯했고, 곧 다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제 주인만은 못할지라도 상대를 꿰뚫는 듯한 눈빛으로 테이블의 승자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분명 나쁘지 않은 눈이었다. 남자의 영혼을 손에 넣으면 필시 그의 영혼도 얻게 될 테니, 다비는 그 이상으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내 테이블이 깔끔히 정리되고, 새 게임이 시작되었다.

  DIO라고 하는 사내는 다비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 초반에는 느긋하게 플레이하는 모양이었다. 한편, 그의 일행은 뭐든 무덤덤하게 선언하곤 했는데, DIO의 표정을 읽기 어려운 것은 특유의 자신 넘치는 태도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지만, 지암의 표정도 읽기 어려울 거라고는 다비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표정을 감춘다기보다는 여전히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게임이 무르익어도 그는 멍하니 손 패와 보드를 번갈아 보다가 늦지 않게 액션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신중하게 상대를 살피는 두 사람 사이에서 몇 차례 승리를 거머쥔 지암이 마지막으로 이긴 판에 ‘역시 자신 없다’며 카드를 자기 앞에서 살짝 치우고 다른 테이블을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꽤나 모순적이었다. 나머지 두 참가자가 적당히 사리고 상대를 관찰하는 중이니 이겨도 크게 따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지만…. 이기고서도 그렇게 말하는 건 역시, 판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자신을 뺀 두 사람의 것임을 알고는 있기 때문이겠지. 자신이 제대로 끼어 있지 않은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다비조차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실제 실력이야 어떻든, 이 자가 즐길 수 있는 건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싸움보단 적당히 돈을 날릴 수 있고 눈이 도는 룰렛이나 슬롯머신인 모양이었다. 바깥에서 무언가 돌거나 찰칵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여자의 몸이 그쪽으로 기울었다가 돌아왔다. … 그리고 남자는 때때로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가 그런 모습을 발견하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둘의 영혼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그리 생각하면 우스울지 몰라도, 실로 애정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사내는 그저 그런 사소한 모든 것이 보고 싶어 함께 밤 나들이를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나에게 관심을 주지 말아야 했을 텐데.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여자가 말한 대로 두 사람이 가져온 칩이 모두 판돈으로 올라온 시점에, 다비는 자신이 생각한 만큼의 승리를 거머쥐지 못해 다소 초조해졌다. 무엇을 핑계로 영혼을 걸게 해야 좋단 말이지. 전부 빼앗는 것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최소한 이런 부자들조차 초조해질 만큼의 승리는 거둬야 했는데. 행운의 여신은 이러나저러나 DIO의 편을 들고 있는 듯했다. 아니, 흔히 말하듯 남자의 신은 이미 그의 옆에 앉아서 한눈을 팔고 있을 뿐인지도 모를 일이다.

  “흠, 칩을 다 잃진 않았지만… 슬슬 네가 돌아가고 싶어 할 시점인 것 같구나, 지암.”

  판을 마무리 지으려는 듯, DIO가 다정하게 동행에게 말을 걸었다. 초조해 보이는 다비를 지켜보던 지암은 작게 웃음을 흘려보내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사람은 조금 아쉬워 보이지만요. 그렇게 여자가 속삭인다. 그 말에 남자는 다비에게 시선을 두었다가, 이내 연인에게로 돌리더니 어깨를 으쓱인다. 가버리려는 건가? 지금 놓치면 다신 저 둘은 물론이고 그 비슷한 사람조차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도박사의 직감이, 수집가의 욕심이 지금을 놓치지 말라며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무슨 핑계로?

  “마지막으로 잠시 괜찮겠나? 다비여. 자네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더군. 내게도 그걸 조금 보여준다면 기쁘겠다만….”

  두 사람을 붙잡을 말을 생각하던 다비에게, 황금빛 사내가 달콤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붙였다. 절대로 저 속삭임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존본능이 소리쳤다. 줄곧 이런 삶을 살았다. 이제 와 목숨이 저를 살려달라고 울부짖는다니 우습지도 않은 일이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였고, 다니엘 J. 다비는 그것을 직감했다. 그 까닭이 사내가 모습을 감춰서일지 자신이 죽어서일지는 그저 남자에게 다비가 시시한 자인지 불쾌한 자인지에 달렸을 뿐이었다.

  역시 이 순간 그는 어쩔 수 없는 도박사였다. Of course. 물론 좋습니다. 다비는 사내가 던진 미끼를 곧장 물었다.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보여드릴 수 있지만, 그걸 보여드리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란 핑계에 불과했다. 다비는 남자를 노리고 있을 뿐이었으니. 남자는 그걸 뻔히 알고 있는 듯했으나,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그 조건이란 무엇이지? 다비에게 흥미를 느끼는 듯한 주인의 모습에, 지암도 팔짱을 끼고 그를 제대로 훑어보았다. 흥, 하고 가볍게 불만스러운 숨을 내쉬는 것이 들렸다.

  “저와 내기를 한 판 해주시지요. 꼭 게임이 아니어도 좋고요. 승부만 낼 수 있다면 내용은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간단하다면 서로 편한 일이지요.”

  “그 말은…. 내기가 자네의 능력과 관계가 있단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나.”

  다비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DIO에게는 분명 운이 따르는 모양이었지만,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공들여 움켜쥐는 것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충분히 판을 짜두지 못한 것은 아쉬웠으나 오늘 밤 이런 영혼을 만난 것 자체가 우연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무슨 게임을 하든 그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이기면 그만이었다. 이겨서 영혼을 얻으면 그다음부터는 누구도 반론할 수 없으니까.

  “내기에 하찮은 재주 시연을 걸 생각은 아니겠지, 다니엘?”

  지암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팔짱을 낀 채 상대를 평가하는 사나운 눈빛은 카지노의 밝은 조명 탓에 거의 주황색으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짐승과도 같은… 아니, 짐승다운 눈빛이었다.

  “당연히 아니지요. 물론 돈도 아닙니다. 저희 모두 그런 것쯤은 판돈으로 시시하다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저는 서로의 영혼을 걸고 내기하고 싶습니다.”

  “영혼이라. 사람치고는 특이한 걸 요구하는군, 자네는.”

  건방지기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다비를 바라보던 여자는, 사내가 무어라 더 대답하기도 전에 그 앞을 막아섰다. 그가 팔짱을 끼고 더없이 거만한 자세로 서서 다비를 내려다보았다.

  “애초에 네 영혼을 가지는 게 주인님께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거지? 하물며 소장품으로도 네놈처럼 조잡한 사기꾼의 혼은 가치가 없는데.”

  지암의 차가운 응답에 DIO는 유쾌하다는 듯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 다비가 말려달라고 시선을 두어도 그는 ‘네가 대답해야 하는 것은 저쪽’이라고 말하듯 눈짓할 뿐이었다. 대단한 연인들 납셨군. 주인이라고 불리는 주제에 마치 평등하기라도 한 것처럼 굴기는. 다비는 웃으며 상대를 달래었다.

  “진정하시지요.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했을 뿐, 제게 원하는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서로 그걸 걸고 내기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서야 지암은 거두었던 웃음을 다시 얼굴에 띄웠다. 그건 다비의 목표가 흔히 짓는, 바라던 조건이 나왔을 때의 안도한 표정과는 달랐다. 오히려 다비 자신이 승리를 확신했을 때 짓는 웃음과 닮아 있었다. 게임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건만, 그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네 인생을 걸도록 해. 네까짓 놈의 영혼은 쓸모가 없지만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무엇으로든 쓸모가 있겠지. 그렇지 않나요, 주인님?”

  할 말을 마친 그가 DIO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DIO는 그저 사랑스럽다는 듯 웃으며 다가와 품으로 끌어당겼다. 남자가 품에 안긴 연인의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구나, 지암. 그러면 네가 상대하겠느냐? 게임을 즐기지 못해서 너도 아쉬울 테지.”

  놀리는 듯한 말에, 지암이 눈을 한 바퀴 빙글 굴렸다. 별로 즐기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당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지암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DIO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여자는 부루퉁한 표정을 짓다가도 사내의 웃음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태도를 누그러트렸다.

  “음? 불만이라도 있느냐?”

  “치, 아녜요. 당신께서 즐거우시다면 저도 즐거워요.”

  카이로의 현란한 연인은 서로 마주 보며 다정하게 미소 짓는다. 사정을 모르고 모습만을 보았다면 누구나 분명 정다운 연인이라 생각할 정도로, 두 사람은 밝게 웃고 있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다비는 어느 쪽을 먼저 얻어도 남은 한 명이 덤벼오겠다는 확신에 조금 안심했을 뿐이었다. 그런 다비에게 의견을 구하듯 DIO가 시선을 주었다. 다비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야 상관없습니다. 이 다비, 상대가 누구든 도박에서 물러난 적은 없습니다. 종목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하던 대로 포커가 무난하겠지. 아까 다른 게임은 잘 모른다고 했으니까.”

  “그래. 당신도 불만은 없겠지? 하지만 그전에 당신 능력부터 보여줘야겠어.”

  지암이 곧장 다비의 맞은편 자리에 앉더니, 가벼운 손짓으로 딜러를 호출했다. 딜러는 그에게 개인적인 포커 내기를 할 거라는 말을 듣고, 테이블을 정리한 뒤 새 카드를 건넸다. 지암은 곧장 카드를 받아 다비를 향해 던지듯 내려놓았다. 다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자신감이 넘치시는군. 사내의 비켜달라는 말에 딜러가 도망치듯 방에서 빠져나갔다. 영혼을 건 싸움에 이제 다른 목격자는 없었다.

  “마침 보여드리려던 참입니다. 저의 능력, 오시리스신을.”

  다비는 오시리스신을 불러냈다. DIO가 오시리스신을 바라보자 지암이 뒤늦게 다비의 뒤쪽을 보았다. DIO는 마치 눈에 새기기라도 하듯 오시리스신을 훑어보았다. 지암은 그가 무엇을 보는지 궁금한 듯 허공을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었고. 여자에겐 능력이 없는 건가? 오히려 다비에겐 잘된 일이었다. 능력을 경계할 상대가 하나라도 줄어든다면 나쁘지 않지.

  “제 소문을 알고 계신다면 굳이 숨길 것도 없겠지요. 저는 오시리스신의 힘으로 저와의 내기에서 진 사람의 영혼을 빼앗아 칩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비는 두 사람에게 늘 가지고 다니는 수집품을 펼쳐 보여주었다. 둘은 다른 사람처럼 의심하는 표정도, 믿어서 경멸하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내용물을 훑어보았다. 이 남자는 자기 아이까지 넘겼나 보군. 예, 상당히 집요한 사내였지요. 끝까지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기에서 지면 나도 이렇게 칩이 된다는 거지. 무섭기도 해라.”

  그래도 인형이 되는 것보다야 이쪽이 나을걸. 다비는 속으로 짧게 동생의 취미를 경멸하며 눈을 굴렸다. 애초에 여자에게는 별로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대답이 없자 지암은 싱겁다는 듯 숨을 내쉬고는, 테이블에 얹혀 있던 가장 얇은 칩을 다섯 개씩 쌓아 하나를 밀어주었다. 칩은 굴러다니는 걸로 대충 쓰지? …생각보다 적군. 다비는 새 카드임을 보여주며 포장을 뜯었다.

  “셔플은 네가 해. DIO님은 내가 손가락이라도 벨까 늘 걱정하시거든.”

  “호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건 감히 우리 앞에서 사기라도 치겠단 뜻으로 알아들으면 되는 거지?”

  그가 싸늘하게 되물으며 비웃었다. 다비는 여전히 말없이 어깨를 으쓱하며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마치 다비를 감시라도 하듯, 사내는 여자 뒤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당신 한 장, 저에게 한 장, 당신 한 장, 저에게 한 장…. 다섯 장의 카드가 긴장감 속에서 분배되고, 두 사람이 카드를 뒤집었다.

  하! 확신에 찬 표정으로 지암이 웃었다. 아까처럼 무표정할 줄 알았는데? 상관은 없었다. 그에게 준 것은 풀하우스를 쉽게 만들 수 있는 손 패였다. 하지만 교환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카드는 무조건 세트로 떨어지는 카드…. 다비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지암이 카드를 덮었다. 애초에 패는 상관이 없었다는 것처럼, 그는 카드를 덮고 진행하라는 듯 턱짓을 했다. 뒤에 서 있던 DIO가 지암의 결정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다비에겐 누가 무슨 속임수를 쓰든 알아차릴 수 있으리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무슨 꿍꿍이지, 저 두 사람은?

  “…저는 두 장 체인지하도록 하죠.”

  그러든지. 다비가 카드를 교체하자, 지암이 턱을 괴고 쌓아놓은 칩을 그대로 앞으로 밀었다.

  “미안한데 빨리 끝내자. 레이즈, 올 인.”

  “…콜. 바라시는 대로.”

  저것은 분명 블러핑이다. 저 두 사람의 의기양양한 태도라면 누군가는 속아 나가떨어질 테지. 하지만 다비는 자신이 나누어준 패가 확실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았다. 다비는 도박에서만은 자신에게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증명하지 못하는 한 속임수라며 판을 엎을 수는 없는 법이다. 반대로, 속임수라는 것을 상대가 확신했다면 그 마음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영혼을 손에 넣을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다비와의 싸움에선 들키지 않으면, 아니, 들키지 않아야만 속임수가 아닌 것이었다.

  영혼을 재는 그의 오시리스신은 그런 점에서 공정했고, 그래서 다비는 철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카드를 그가 나눠주기만 하면 이기는 것에 문제는 없었다. 감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선명하고 날카로웠고, 손놀림 또한 들키지 않았다.

  들키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내가 이길 패를 만들었는데?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있었건만 갑자기 손 패가 바뀌었다. 다비는 이 순간 자신의 기억마저 의심했다. 손에서 빠져나가는 감각조차 없이 카드가 바뀌었다. 손 패와 카드 뭉치를 번갈아 보자,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다.

  그때 다비의 표정을 본 지암이 키득키득 웃었다. 저 반응은 분명 무슨 수를 쓴 거다. 누가 썼는지 알 방법은 없지만 분명 저쪽도 사기를 쳤다. 하지만…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다비는 알 수 없었다. 이게 저자의 능력인가? 무슨 능력이어야 눈 뜨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 패를 바꿔버릴 수 있지?

  “이겼어요, 주인님.”

  지암이 테이블에 자기 패를 던졌다. 분명 다비의 손에 있던 패가 보란 듯이 그곳에 던져져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아니, 이건 무효야! 사기가 분명해. 저건 내 손에 있던 카드….”

  “사기? 무슨 소리야? 카드는 새것인 데다가 네놈이 섞고 나눠줬는걸. 나는 소매도 없는 옷을 입고 있는데 카드로 무슨 사기를 어떻게 친다는 거야?”

  치맛자락이라도 들춰줄까? 지암이 태연하게 비웃었다. 알고 있었다. 무언가 있을 턱이 없었다. 카드에 손을 댄 사람은 분명 다비뿐이었다. 패로 사기를 칠 수 있는 사람이 분명 다비 혼자뿐이었다! 이들이 속임수를 썼다고 증명할 수 없는 이상, 속임수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 다비의 눈에 절망이 깃들자 DIO가 유쾌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위화감? 한참 말없이 패를 내려다보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한 번 더 보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밝혀내기만 하면 고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 재대결을 요청합니다. 무엇이든 걸죠.”

  다비는 늘 자신이 듣던 말을 이렇게 허무하게 입밖에 내뱉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암이 차가운 말과는 대조되는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채 말했다. 꼭 이 모든 게 우습다는 듯이. 약자의 발버둥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듯이. …여러모로 익숙한 얼굴이었다.

  “억지도 정도가 있어야지, 재대결? 네 목숨도 쓸모는 별로 없다고 했잖아. 대체 무엇을 걸 건데?”

  여자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묻자, 사내도 말없이 다가와 다비를 내려다보았다. DIO의 거구가 그림자를 드리우자, 그 존재가 내뿜는 중압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도박사로서 늘 압박을 받는 그조차도 공포를 느끼고 마는 거대한 존재감. 이 압박감은 아무리 정신력이 강하더라도 혼자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존재만으로도 공포를 드리우는 이 맹수 같은 사내 앞에서, 도대체 어떤 인간이 당당히 서 있을 수 있을까? 다비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돈도 필요 없고 목숨은 이미 저당 잡힌 사람이 대체 무엇을 걸어야 좋단 말인가?

  “다른 사람의 가족도 수집한 주제에 제 가족은 팔아치울 것으로 생각해 내지 못하는군. 자네 동생에게도 비슷한 능력이 있지 않았나?”

  —그런가, 테렌스도 이들의 먹잇감이었나.

  다비는 처음 보는 사내가 동생과 그 능력의 존재를 아는 것에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애초부터 나 혼자만을 노린 게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 녀석을 판돈으로 걸든 걸지 않든 차이는 없을 테지. 의리라곤 없는 형제지만,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이상 이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동생 녀석도 이 사내를 만나면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너도 이 사내의 영혼을 원하게 될 것이고, 너도 같은 상황이라면 살기 위해 나를 걸었을 것이다.

  “걸겠습니다. 제 동생 테렌스 T. 다비를.”

  볼 것도 없이 결과는 똑같았다. 싸움은 똑같이 전개되었다. 여자는 카드를 건들지도 않고 올인했고, 다비는 한 장을 교환하며 카드 뭉치를 일부러 조금 건드렸다.

  카드를 오픈하기 직전, 이번에도 갑자기 손 패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아예 다비의 손에서 빠져나온 카드가 보란 듯이 말도 안 되는 조합으로 지암의 손에 들어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자기 패를 눈도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노려보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보이지 않았다. 사내의 능력도, 여자의 능력도.

대신, 다비의 눈에 드디어 위화감의 정체가 보였다.

  방의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방 안에서, 여자가 내려놓은 패의 겹친 모양이, 건들지도 않은 카드더미의 쌓인 형태가 달라져 있었다. 다니엘 J. 다비는 그 정체를 깨달았다.

  이 남자는, 이 남자의 능력은….

  고발은 의미가 없었다. 이기지 못한 이상, 다비에겐 볼모조차 없었다. 공포에 질려 고개를 들자, DIO가 이빨을 드러내며 씩 미소 지었다. 더없이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치명스럽고 두려운 자의 얼굴이다. 자신이 죽은 줄도 눈치채지 못한 채 죽게 할 수 있는 자였다. 이 남자를 거스르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이겼어. 당신 동생을 불러와. 직접 데리러 가지.”

  지암의 통보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지만, 다비는 공포에 질려 눈앞이 흐려져 있었다.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더듬거리고 있자니, DIO가 앞으로 다가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안심해라, 다비여. 두려워할 것 없다. 네 능력은 잘 보았다. 쓸모를 인정하지. 나를 배신하지만 않는다면, 네게 해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너는 눈치가 너무 빠르군. 이곳에 머물러 주어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묻지, 네 동생의 능력은 무엇이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비 자신의 떨리는 목소리가 물음에 대답했다. 저처럼 영혼을 다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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